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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도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
춘추전국의 어지러운 세월, 진(晉)나라에 예양(豫讓)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처음 범씨와 중행씨를 섬겼지만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다 지백(智伯)을 만나면서 삶이 달라졌다. 지백은 예양을 귀하게 여기고 그의 능력을 알아주었다.
그러나 권력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백은 조양자(趙襄子)와 한·위 세력에 패해 죽었다. 예양은 그 소식을 듣고 떠나지 못했다. 그가 남긴 말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士爲知己者死
사위지기자사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예양에게 지백은 단순한 옛 주인이 아니었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자신을 사람답게 대하고 인정해준 사람이었다. 예양은 조양자에게 복수하려다 붙잡혔지만 한 차례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뜻을 버리지 않았다. 몸에 옻칠을 해 모습을 바꾸고 숯을 삼켜 목소리까지 달리하며 다시 기회를 노렸다고 전한다.
다시 붙잡힌 예양에게 조양자는 물었다. 이전에도 다른 주인을 섬겼으면서 왜 유독 지백을 위해 목숨까지 거느냐고. 예양의 답은 분명했다. 예전에 섬긴 사람들은 자신을 평범한 신하로 대했으니 자신도 그만큼 보답했지만, 지백은 자신을 특별히 알아주고 존중했으니 자신 역시 그에 맞게 보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예양은 복수를 이루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조양자의 옷을 받아 칼로 베어 지백에게 원수를 갚았다는 뜻을 남긴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한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복수와 죽음을 그대로 의리라고 미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천 년이 넘도록 예양의 이름이 남은 까닭은 그의 칼보다 그 마음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잘나갈 때 찾아온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진짜 어려운 것은 상대가 아무것도 돌려줄 수 없게 된 뒤에도 그 사람에게 받은 믿음과 신의를 잊지 않는 일이다.
살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내 형편이나 자리가 아니라 내 사람됨을 알아주는 사람 하나를 만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래서 예양이 목숨보다 귀하게 여긴 것도 권력이 아니라 ‘나를 알아주었다’는 기억 하나였는지 모른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예양의 복수와 죽음을 그대로 의리라고 미화할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을 알아준 사람을 형편이 달라졌다고 잊지 않는 마음, 아무런 이익이 돌아오지 않아도 지난 신의를 기억하는 마음만큼은 시대가 달라져도 한번쯤 되새겨볼 만하다.
선거는 끝나도 사람의 기억은 남는다. 권력도 자리도 언젠가는 지나가지만, 어려울 때 나눈 약속과 사람 사이의 신의는 오래 남는다.
어쩌면 오래 기억되는 정치도 거창한 데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을 믿어준 사람과 주민에게 했던 약속을 잊지 않는 것, 그 정도의 신의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
[동대문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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