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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秋) — 하늘은 높고, 마음은 조금 가볍게」

2026-09-05 17:41 | 입력 : 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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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마비의 높은 하늘 아래 책 한 권 펼치고,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저마다의 결실을 돌아보는 계절"


천고마비의 맑은 하늘 아래 코스모스와 국화가 피고, 들판에는 수확의 계절이 찾아왔다

책 한 권, 가벼운 운동, 마음 한 번 돌아보기…가을은 몸과 마음을 함께 추스르는 시간

가을입니다.

하늘은 한층 높아졌고 흰 구름은 두둥실 흘러갑니다. 바람 끝에는 어느새 서늘함이 묻어나고, 길가의 코스모스는 가느다란 몸을 흔들며 계절이 바뀌었음을 먼저 알려줍니다.

천고마비(天高馬肥).

하늘은 높고 들판은 익어갑니다. 봄에 뿌린 씨앗은 뜨거운 여름을 견디고 이제 고개 숙인 곡식이 됐습니다. 논 한가운데 허수아비는 두 팔을 벌린 채 서 있고, 참새들은 그 곁을 눈치껏 맴돕니다.

황금빛 논과 허수아비, 참새 몇 마리만 보아도 오래전 가을 풍경 하나가 그대로 살아나는 듯합니다.

* 책 한 권이 잘 어울리는 계절

가을 하면 역시 독서가 떠오릅니다.

더위가 한풀 꺾이고 마음이 차분해지면 책 한 권 펼치기 좋은 계절이 됩니다. 꼭 많이 읽을 필요는 없겠지요. 한 문장이라도 오래 마음에 남아 나를 돌아보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겁니다.

젊을 때는 책에서 세상을 배우려 했다면, 나이가 들수록 책을 읽으며 오히려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가을에는 그런 질문 하나쯤 품어도 좋겠습니다.

* 코스모스와 국화, 그리고 오래된 신화

코스모스는 바람이 불면 흔들립니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국화는 조금 더 늦게 피어 서늘해진 계절을 차분히 밝힙니다.

꽃을 보다 보면 그리스 신화 속 나르키소스도 떠오릅니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사로잡혀 끝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은 필요하지만, 자기 모습에만 머물러서는 곁의 사람과 세상을 놓칠 수도 있다는 오래된 경고처럼 들립니다.

가을꽃을 바라보며 내 마음도 한번 살펴보되, 너무 오래 자신에게만 머물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운동장에 만국기가 펄럭이던 날

가을이 오면 옛 운동회 풍경도 생각납니다.

운동장 위에는 만국기가 펄럭이고, 아이들은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렸습니다. 어른들은 운동장 가장자리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목이 터져라 응원했습니다.

점심시간이면 김밥과 삶은 달걀을 꺼내 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소박하기 그지없지만 그날의 김밥은 왜 그리 맛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는 일등으로 들어왔고, 누군가는 넘어져 무릎이 까졌습니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 달렸습니다.

생각해보면 운동회는 달리기만 배우던 날이 아니었습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법, 앞선 사람에게 박수치는 법, 늦게 들어오는 친구를 기다려주는 법도 함께 배웠던 날이었습니다.

* 몸도 마음도 가을맞이를

선선한 바람이 부니 걷기에도 좋은 계절입니다. 조금 더 걷고, 햇볕도 쬐고, 굳었던 몸도 천천히 움직여볼 만합니다.

그런데 몸만큼 살펴야 할 것이 마음인 것 같습니다.

사람 때문에 속상했던 일, 뜻대로 되지 않아 오래 담아둔 일, 이미 지나갔는데도 놓지 못한 일…. 그런 것들을 마음속에 계속 쌓아두고 살 수만은 없겠지요.

가을걷이하듯 마음도 한번 정리해보면 어떨까요.

고마운 것은 고맙다고 하고, 미안한 것은 미안하다고 하고, 간직할 것은 간직하고, 이제 놓아도 될 것은 조금 내려놓는 것.

그 정도면 마음의 가을걷이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 무엇을 거두며 살아왔을까

가을 들판의 곡식은 때가 되면 말없이 고개를 숙입니다.

사람의 인생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돈을 얼마나 모았는지, 얼마나 높은 곳까지 올라갔는지도 하나의 결실이겠지만 그것만이 수확은 아니겠지요.

전화 한 통 하면 반갑게 받아주는 친구가 있고, 함께 밥 먹을 사람이 있으며, 누군가 내 이름을 떠올리며 “참 괜찮은 사람이었지”라고 말해준다면 그것도 꽤 넉넉한 가을걷이 아닐까요.

높고 맑은 하늘 아래 구름은 오늘도 두둥실 흘러갑니다. 코스모스는 흔들리고, 국화는 피어날 때를 기다립니다. 들판에서는 곡식이 익고, 어디선가 아이들은 또 힘껏 달리고 있을 겁니다.

우리도 책 한 권 펼쳐보고, 조금 걸어보고, 하늘도 한번 올려다봅시다.

그리고 마음의 곳간도 살짝 열어봅시다.

더 채울 것만 찾지 말고, 이미 내 안에 익어 있는 것들도 한번 돌아보는 가을이면 좋겠습니다.

가을입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시고,
저마다의 삶에도 좋은 결실이 익어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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