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은 참 묘한 곳이다.
낮에는 저마다 바쁜 걸음으로 스쳐 지나가던 사람들이 저녁이면 불을 밝힌 가게 앞에서 다시 만난다. 밥 한 끼를 먹고, 술잔을 기울이고, “요즘 어떠냐”며 안부를 묻는다.
그곳에는 누군가의 하루 벌이가 있고, 자식 공부시키고 식구들을 먹여 살려온 세월이 있다. 그래서 골목상권은 단순히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니라 우리네 인생살이가 만나고 이어지는 삶의 자리이기도 하다.
19일 오후 동대문구 장안동 맛의거리에도 그런 골목의 정겨움이 모처럼 가득했다.
장안동 맛의거리 골목형상점가 상인회(회장 한춘상)는 이날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장한로24길 7 일대에서 ‘장안야화(長安夜花)-밤에 피어나는 미식 산책’을 열었다.
‘장안야화’라는 이름처럼 아직 해가 지기 전부터 골목에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음식 냄새와 음악, 웃음소리가 골목을 채웠다.
이날 행사는 오후 2시 개막을 시작으로 장안 맛보기 시식회와 장기자랑 1·2부, 마술·케이팝 댄스·색소폰·트로트 등 초청공연, 버스킹 경연 등이 차례로 이어졌다. 골목 곳곳에서는 제기차기와 맞칭찬 릴레이, 포토존 등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됐다.
온누리상품권 환급과 상점가 사회관계망 팔로우 경품 행사 등 골목상권 소비를 돕기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무엇보다 골목축제답게 먹거리가 빠질 수 없었다.
주민들은 상인들이 준비한 음식을 직접 맛보고 저마다 한마디씩 평을 남겼다. “식어도 맛있다”, “공짜로 먹기에는 아까울 만큼 맛있다”는 소박한 시식평이 나오자 상인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잘 차려진 말보다 “맛있다”는 손님의 한마디가 더 반가운 곳. 골목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그것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주민들이 직접 무대에 오르는 장기자랑도 골목의 흥을 더했다. 경연 결과 베이비크라운이 1위를 차지했으며 이승희 씨가 2위, 서인선 씨가 3위, 주재학 씨가 4위에 올랐다.
한춘상 회장은 장안동 맛의거리 골목형상점가 상인회 간부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한 회장은 이날 행사를 준비하느라 애쓴 상인회 임원들을 한 사람씩 소개하며 고마움을 전한 뒤, 많은 사람들이 골목을 찾아주고 이곳에서 장사하는 사장님들이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며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어 상인들이 골목을 알리고 손님을 맞기 위해 애쓰고 있다며 장안동 맛의거리가 더욱 활기를 찾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힘을 보태달라고 당부했다.
무대에 함께 선 상인회 간부들에게도 주민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골목에서 매일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이 직접 준비하고 주민들과 함께 만든 축제라는 점에서 이날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이어 행사장을 찾은 지역 인사들도 장안동 골목상권에 대한 저마다의 기억과 바람을 짧게 전했다.
최동민 동대문구청장은 “골목형상점가가 잘돼야 사장님들이 편안하고, 장사가 잘돼야 동대문구 살림도 좋아지고 구민도 행복해진다”며 소상공인과 지역경제,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경진 국민의힘 동대문을 당협위원장은 행사 개최를 축하한 뒤 한춘상 회장이 간장게장 식당을 운영하는 데 착안해 즉석에서 ‘간장게장’ 사행시를 선보였다. 딱딱한 축사 대신 재치 있는 사행시가 이어지면서 행사장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나왔다.
박규남 서울시의원은 ‘장안야화’라는 이름에 의미를 담았다. 박 의원은 “밤에 피어나는 꽃을 의미하는 것 같다”며 이곳이 앞으로도 밤마다 꽃이 피어나듯 사람들이 찾고 활기를 이어가는 골목이 되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이주환 동대문구의회 행정기획위원장은 자신도 소상공인이라고 소개하며 상인들이 장사를 잘하고 마음 편히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장안동 상권을 살리는 데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노연우 구의원은 골목형상점가가 만들어지기 전 상인들과 함께 고민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노 의원은 신복자 전 서울시의원, 안태민 구의원 등과 상인들을 만나 골목형상점가 조성을 고민했던 과정을 언급하며 장안동 맛의거리가 예전의 명성을 다시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안태민 구의원 역시 장안동이 한때 지역의 중심 상권이었다는 점을 회상했다. 안 의원은 골목형상점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상인들과 이 지역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함께 고민했다며 앞으로도 소상공인 지원과 상권 활성화에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박영화 구의원은 “골목상점가들이 잘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며 장안동을 비롯한 지역 골목상권이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순자 구의원은 조금 더 오래된 장안동의 추억을 꺼냈다.
김 의원은 “옛날에 이 골목에서 좀 놀았다”는 말로 웃음을 자아낸 뒤 친구들과 이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많은 사람들이 장안동을 찾았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러면서 예전처럼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는 골목이 됐으면 좋겠다며 장안동 상권의 옛 활기를 되찾기를 바랐다.
마지막으로 인사말에 나선 신복자 전 서울시의원은 골목형상점가를 우리 경제의 ‘실핏줄’에 빗댔다.
신 전 의원은 “대한민국 경제가 살아나려면 장안동 맛의거리가 살아나야 한다”며 상인들에게 열정을 갖고 뛰어달라고 당부하고 주민들에게 추석 인사를 전했다.
이날 행사에는 최동민 동대문구청장을 비롯해 김경진 국민의힘 동대문을 당협위원장, 박규남 서울시의원, 이주환 동대문구의회 행정기획위원장, 안태민·노연우·박주호·박영화·김순자 구의원, 신복자 전 서울시의원 등이 참석해 상인과 주민들을 만났다.
먹고사는 일이 모여 골목을 만들고, 그 골목이 모여 동네가 된다.
이날 ‘장안야화’는 장안동 맛의거리를 지켜온 상인들과 골목을 찾은 주민들이 먹고, 보고, 웃으며 어울린 가을날의 골목잔치였다.
해가 기울 무렵 장안동 맛의거리에는 가게마다 하나둘 불이 들어왔다.
‘밤에 피어나는 미식 산책’이라는 이름처럼, 그날 골목을 밝힌 것은 무대의 조명만은 아니었다. 다시 손님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상인들의 마음과 오래된 골목을 다시 찾은 주민들의 발걸음도 함께였다.
그렇게 장안동의 가을 저녁, 골목에 작은 ‘밤꽃’이 피었다.
[동대문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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