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무릎치료차 병원서 대기중 문득 오래전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느 아들이 있었다. 직장 일에 바쁘고, 사람 만나는 일에 바쁘고, 하루하루 살아가기에도 바빴다. 그런데 어머니는 나이가 들면서 같은 말을 자꾸 반복했다. 방금 한 이야기를 또 하고, 안부 전화를 하루에도 몇 번씩 걸어왔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들은 조금씩 짜증이 났다.
어느 날도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얘야, 바쁘니?”
회의를 앞두고 있던 아들은 무심코 말했다.
“엄마, 지금 바빠. 나중에 전화할게.”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 저녁에도 전화가 한 번 더 왔지만 받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끝내 아들과 다시 통화하지 못했다.
며칠 뒤 유품을 정리하던 아들은 작은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아들에 대한 기록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오늘은 목소리가 밝았다.”
“요즘 피곤한 것 같다.”
“다음에 오면 좋아하는 반찬을 해줘야겠다.”
한 장 한 장 넘기던 아들의 손이 마지막 페이지에서 멈췄다.
짧은 글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어제는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는데 바빴나 보다.”
그 순간 아들은 한참 동안 수첩을 붙잡고 울었다.
살아 있을 때는 귀찮게 느껴졌던 전화가,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받고 싶은 전화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효도는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비싼 선물을 사드리는 것도, 큰 집을 마련해 드리는 것도 아니다. 전화 한 통, 함께하는 밥 한 끼, 그리고 “잘 지내세요?”라는 짧은 안부 한마디면 충분할지 모른다.
부모는 평생 자식을 기다린다. 하지만 자식이 그 기다림을 깨닫는 순간은 대개 너무 늦게 찾아온다.
문득 휴대전화를 내려다본다. 다시는 통화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한 번만이라도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마음이 스친다.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전화를 드린 것이 언제였는지, 안부를 여쭌 것이 언제였는지 떠올려 본다.
우리는 특별한 일을 해야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부모님이 기다리는 것은 거창한 효도가 아니라 평범한 하루 속 작은 관심일지도 모른다.
기적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평범한 하루를 평생 반복한 사람.
우리는 그 사람을 부모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