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결국 신뢰의 예술입니다.
권력은 선거로 얻을 수 있지만, 신뢰는 하루아침에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신뢰를 나라의 가장 큰 보배라 했습니다.
중국의 정치 고전 《정관정요(貞觀政要)》에는 이런 말이 전해집니다.
信者, 國之大寶也(신자, 국지대보야).
"신뢰는 나라의 가장 큰 보배다."
좋은 정치는 화려한 말이나 높은 자리가 아니라 백성의 신뢰 위에서 세워진다는 뜻입니다.
선거가 끝나면 늘 비슷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어제까지는 의리를 말하던 사람이 오늘은 자리를 말하고, 공정을 외치던 사람은 표 계산에 바쁘며, 약속은 잉크도 마르기 전에 새로운 계산법으로 바뀝니다. 옛사람들은 이를 두고 견리망의(見利忘義)라 했습니다. 이익을 보자 의리를 잊는다는 뜻입니다.
김삿갓이 오늘의 정치를 본다면 아마 이렇게 한 수 남겼을 것입니다.
벼슬은 종이 한 장에 오르내리고,
의리는 밥 한 그릇에 팔려 나가네.
웃는 이는 높은 자리에 앉았으나,
웃음거리는 마을 끝까지 따라가더라.
예부터 매관매직은 나라를 좀먹는 병이라 했고, 협잡은 사람을 속이는 재주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닙니다. 약속을 가볍게 여기고 신의를 잃는 것입니다.
정치는 약속으로 시작해 신뢰로 완성됩니다. 약속이 계산으로 바뀌고, 신의가 이해관계로 바뀌는 순간 주민들은 정치를 믿지 않게 됩니다. 정치불신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작은 약속 하나를 가볍게 여기는 순간부터 차곡차곡 쌓여 갑니다.
이를 경계하듯 김삿갓이라면 또 이렇게 읊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벼슬 따라 웃음 사고
의리 팔아 자리 얻네
봄꽃 같은 권세라도
신뢰 잃으면 가을잎이네
권세는 잠시 빌릴 수 있습니다. 자리도 잠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뢰만은 결코 빌릴 수도, 거래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의 이익 때문에 도리를 버리면 내일은 그 이익마저 사람들에게 외면받게 됩니다. 얄팍한 정치와 신의를 팽개친 거래는 잠시 통할 수는 있어도 오래갈 수는 없습니다.
결국 정치는 자리를 얻는 경쟁이 아니라 사람을 얻는 과정입니다.《정관정요》가 말한 것처럼 신뢰는 나라의 가장 큰 보배입니다. 벼슬은 얻을 수 있어도 신뢰는 얻기 어렵고, 권력은 빌릴 수 있어도 품격은 빌릴 수 없습니다.
옛말에 "인무신불립(人無信不立)", 사람은 신의를 잃으면 설 곳을 잃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명심보감》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경계합니다.
"불의로 취한 재물은 끓는 물에 뿌려지는 눈과 같고, 뜻밖에 얻어진 논밭은 물살에 밀리는 모래와 같다."
불의하게 얻은 재물도, 권세도, 벼슬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끝내 남는 것은 벼슬이 아니라 신뢰이며, 권력이 아니라 품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