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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기다림이 꽃이 되다

2026-07-24 18:21 | 입력 : 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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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장을 타고 피어난 꽃, 그리움과 명예를 품다
* 나태주 시가 들려주는 능소화의 기다림과 희망


능소화가 한창이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담장을 타고 붉게 피어난 능소화는 멀리서도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 송이 한 송이는 오래 머물지 않지만,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긴 여름을 아름답게 물들인다. 화려하게 피어도 미련 없이 통꽃째 떨어지는 모습은 오히려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예부터 능소화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꽃이었다. 꽃이 질 때 동백처럼 통째로 떨어지는 모습 때문에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귀한 나무였던 탓에 '양반꽃', '양반화(兩班花)'라 불렸다. 장원급제자의 관모를 장식한 어사화를 닮아 '어사화(御賜花)'라는 이름도 얻었다.

능소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궁녀 소화의 전설이다. 임금을 기다리다 생을 마친 궁녀가 담장 아래 묻힌 뒤, 그 자리에서 하늘을 향해 피어난 꽃이 능소화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사실 여부를 떠나, 능소화가 오랫동안 기다림과 그리움의 상징으로 사랑받아 온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와 영광, 그리움과 기다림, 그리고 귀한 인연이다. 그러나 꽃말보다 더 깊은 의미는 능소화의 삶에 있다. 뜨거운 태양을 견디며 피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꽃을 내려놓고, 다시 피어날 날을 묵묵히 준비하는 모습이다.

한때는 꽃가루가 눈에 닿으면 실명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산림청 연구 결과 그런 위험성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고 실제 사례도 보고된 바 없다.

능소화가 품은 기다림을 가장 아름답게 노래한 이는 나태주 시인이다.

〈능소화 아래〉 

                                            나태주

바람만 불어도 가슴 설레요
붉은 꽃 입술만 봐도 가슴 아파요

그 사람 끝내 나 만나지 못해
울면서 가던 길
혼자서 떠나갔는가

능소화, 능소화 아래
나 여기 울먹이는 거
그 사람 알고 있을까

이 시는 끝내 만나지 못한 사람을 향한 그리움을 담담하게 그려 낸다. 능소화 아래 홀로 선 화자의 모습은 꽃보다 더 붉은 기다림을 보여 준다. 담장을 타고 오르는 능소화처럼 사람의 마음도 닿을 수 없는 이를 향해 끝없이 오르고 있음을 말해 준다.

능소화 지다〉

                                         나태주

사랑은 잠깐 잠깐이어서 사랑이어요
꽃 피는 것도 잠깐 잠깐이어서 꽃이어요

사랑이 떠난 자리
꽃이 진 자리

그대 돌아올 날 기다려도 좋을까요?
다시 꽃 필 날 믿어도 좋을까요?

이 시는 능소화가 지는 순간을 이별이 아닌 희망으로 바라본다. 꽃은 오래 머물지 않지만, 떨어짐은 끝이 아니라 다시 피어나기 위한 쉼이다. 그래서 능소화는 피어 있는 순간보다 지는 순간이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어쩌면 능소화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조용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모른다.

명예는 높은 자리에 있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품격에서 나오고, 영광은 권력보다 책임에서 완성된다. 기다림은 조급함을 이겨 내는 인내이며, 귀한 인연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다.

정치도 다르지 않다. 오래 권력을 쥔 사람이 아니라 오래 신뢰받는 사람이 역사를 남긴다. 화려한 말보다 청렴과 성실로, 계산보다 원칙과 절제로, 권모술수보다 지조와 절개로 국민의 마음을 얻는 사람이 진정한 명예를 얻는다.

그래서 해마다 여름이면 우리는 능소화를 다시 찾는다. 붉은 꽃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꽃이 들려주는 기다림과 사랑, 그리고 다시 피어날 희망을 만나기 위해서다.

세상에는 오래 피는 꽃보다 오래 기다리는 꽃이 더 아름답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오래 권력을 누린 사람이 아니라, 오래 신뢰받는 사람이 끝내 역사를 남긴다.

능소화가 바로 그런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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