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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전엔 ‘당신뿐’, 당선되니 ‘N분의 1’

2026-08-15 09:14 | 입력 : 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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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지방선거 현장에서 본 정치인의 의리와 배신…“논공행상의 저울을 보면 앞으로 4년의 정치가 보인다”


지난 지방선거를 현장에서 경험했다는 한 독자가 편지를 보내왔다. 특정인을 겨냥하기보다 선거 전후 달라지는 정치인의 모습과 의리·공정·배신, 그리고 선거가 끝난 뒤의 논공행상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독자의 이야기를 편지 형식으로 정리해 소개한다.

"선거가 끝난 지도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가끔 그때를 돌아보면 씁쓸한 웃음이 납니다."

선거 전에는 “당신뿐이오”, “끝까지 함께 갑시다”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아쉬울 때라 그런지 전화도 잘 받고, 작은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고, 비가 오나 더우나 함께 뛰는 사람의 손을 꼭 잡아주더군요.

저도 그 말을 믿었습니다. 무슨 자리를 바라거나 선거가 끝난 뒤 대가를 기대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선택한 사람이 잘되기를 바랐고, 우리 지역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름대로 힘을 보탰습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나니 묘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토록 “당신뿐”이라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정의로운 표정으로 ‘공평’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똑같이 대해야 한다며 ‘N분의 1’을 말합니다. 선거 때 함께 땀 흘린 사람이나, 유권자도 아니면서 중립을 지킨다며 멀찍이 서서 구경하던 사람이나 이제는 똑같다는 겁니다.

심지어 선거 과정에서 자신을 떨어뜨리기 위해 온갖 입질과 훼방을 놓았던 사람까지도 이제는 같은 저울 위에 올려놓고 ‘공평’이라 말한다면, 과연 그것이 진짜 공정인지 묻고 싶습니다. 도움을 준 사람에게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누가 함께했고 누가 방관했으며 누가 방해했는지조차 구분하지 못한 채 모두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 판단인지 의문입니다.

물론 선거를 도왔다고 특혜를 달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자리를 달라는 것도, 이권을 챙겨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보은정치야말로 사라져야 할 구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사람에 대한 도리이고, 그보다 더 크게는 정치인의 판단과 공정에 대한 기준입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당신밖에 없다”고 해놓고 목적을 이룬 뒤에는 그때의 말과 관계까지 지운 채 갑자기 ‘공평’을 내세운다면 그것이 정말 공정일까요.

공평과 망각은 다릅니다. 공정과 배신도 다릅니다.

어쩌면 선거가 끝난 뒤 정치인이 가장 먼저 치르는 시험이 논공행상(論功行賞)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선거라는 전쟁을 함께 치르고 나면 누가 어디서 무슨 일을 했고,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평가하는 시간이 찾아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논공행상은 선거를 도왔다고 자리나 이권을 나눠주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논공행상이 아니라 보은과 특혜가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을 공으로 인정하고, 잘못은 잘못으로 가려내는 최소한의 분별과 사람에 대한 도리입니다.

공평하다는 것은 모두를 무조건 똑같이 취급한다는 뜻도 아닐 겁니다. 같은 원칙과 같은 저울 위에서 각자의 공과 과를 제대로 헤아리는 것이 공정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

우리는 선거가 끝난 뒤 이 첫 단추를 잘못 끼워 조직 전체가 뒤틀리는 모습을 적지 않게 보아왔습니다. 함께 땀 흘린 사람의 공은 슬그머니 지우고, 멀찍이 서 있던 사람까지 어느 날 갑자기 ‘N분의 1’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저울에 올리는 것도 이상합니다. 반대로 자기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능력과 원칙을 무시한 채 자리를 챙겨주는 것 역시 공정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저는 선거가 끝난 뒤의 논공행상을 보면 그 정치인의 앞으로 4년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선거 하나의 공과 과, 상과 벌조차 공의(公義)에 맞게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앞으로 자신을 지지했던 주민과 지지하지 않았던 주민을 함께 품으며 어떻게 시정과 구정을 이끌 수 있을까요.

선거가 끝난 뒤에는 훨씬 더 무거운 저울을 들어야 합니다. 사람을 쓰는 인사도 해야 하고, 주민의 세금으로 예산도 배분해야 하며,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정책도 결정해야 합니다. 때로는 자신의 지지자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려야 하고, 자신을 반대했던 주민의 주장이 옳다면 그 손도 들어줘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논공행상은 선거의 끝이 아니라 어쩌면 당선자의 첫 인사이고 첫 정치인지도 모릅니다. 그 작은 저울 하나를 어떻게 드느냐를 보면 앞으로 4년 동안 더 큰 인사와 예산, 정책과 이해관계 앞에서 어떤 저울을 들지도 어렴풋이 보입니다.

정치판에는 정의와 공정을 말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가끔 그 저울을 들여다보면 묘합니다. 내 편의 잘못에는 사정이 있고 남의 편의 잘못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할 때는 의리를 찾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공정을 이야기합니다.

옛말에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 했습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토사구팽(兔死狗烹)이라는 말도 떠오릅니다.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선거 전에는 “형님”, “선배님”, “동지”, “언니”, “누님”, “자매”를 찾다가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멀어지는 모습이 꼭 닮았습니다.

더 씁쓸한 것은 어제까지 함께 비를 맞던 사람은 어느새 문밖에 서 있는데, 비 한번 맞지 않았던 사람이 선거가 끝난 뒤 슬그머니 나타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우산을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모두에게 공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왜 그 공평은 선거가 끝난 뒤에야 그토록 선명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정치인의 의리는 훨씬 소박합니다. 사람이 필요할 때 했던 말을 배부른 뒤에도 기억하는 것, 어려울 때 함께했던 사람을 성공했다고 모른 척하지 않는 것, 생각이 달라져 헤어지더라도 함께했던 시간까지 부정하지 않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물론 정치인이 지켜야 할 가장 큰 의리는 결국 주민과의 의리일 것입니다. 자신에게 표를 준 사람뿐 아니라 반대한 주민까지 공평하게 대하고, 선거 때 한 약속을 기억하며, 자신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도 귀를 여는 것이 진짜 공정일 겁니다.

정치인의 진짜 얼굴은 선거 전보다 선거가 끝난 뒤 더 잘 보이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아쉬울 때 얼마나 허리를 깊이 숙였느냐보다, 더 이상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을 도왔던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자신을 반대했던 주민에게도 같은 원칙을 적용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가 드러납니다.

돌이켜보면 저 자신에게도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남습니다.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채 그렇게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다는 사실이 때로는 자존심까지 상하게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사람을 위해 참 어이없는 선거운동을 했구나” 싶은 자조적인 웃음마저 나옵니다.

더구나 선거 전에는 그렇게 다급하게,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부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번 한 번만 도와달라”, “당신 아니면 안 된다”고 절박하게 매달리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나니 그 절박함은 어디로 갔는지, 이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공평’과 ‘N분의 1’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더 허탈하고, 그래서 더 사람을 잘못 봤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제 선택이었습니다. 누군가를 탓하기 전에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한 제 판단부터 돌아봐야겠지요. 선거운동을 했던 시간이 아깝다기보다, 제가 믿었던 사람과 실제 모습 사이의 거리를 뒤늦게 알게 됐다는 것이 더 씁쓸합니다.

그래서 이번 경험을 후회로만 남기지는 않으려 합니다. 사람을 보는 눈도 유권자의 책임이고, 한번 잘못 판단했다면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 또한 유권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말에 조강지처(糟糠之妻)는 버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가난할 때 술지게미와 겨로 끼니를 함께했던 사람을 잊지 말라는 뜻이지요.

정치라고 크게 다를까요.

배고플 때 함께 먹었던 밥상을 배부른 뒤 걷어차지 않는 것. 정치인의 의리도 어쩌면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선거 전에는 “당신뿐이오” 해놓고, 당선되고 나서는 “모두 N분의 1이오”라고 말하지 않는 것. 정의로운 척하기보다 정의롭게 행동하고, 공평을 말하기 전에 자신의 말과 행동부터 같은 저울에 올려놓는 것. 그리고 토끼를 잡았다고 사냥개부터 잊지 않는 것 말입니다.

선거는 하루면 끝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지켜본 사람들의 기억은 다음 선거까지 남습니다.

정치인은 당선증을 받는 순간 선거가 끝났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유권자에게는 바로 그날부터 그 정치인에 대한 진짜 평가가 시작됩니다.

저 역시 끝까지 두 눈을 뜨고 지켜볼 생각입니다. 누가 정의를 말로만 외치는지, 누가 공평이라는 이름 뒤에 자신의 변화를 감추는지, 누가 공과 사를 제대로 구별하는지, 그리고 누가 처음의 약속과 사람에 대한 도리를 끝까지 지키는지 말입니다.

지난 선거에서 사람을 잘못 본 제 눈도 함께 반성하겠습니다.

선거 전 그렇게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당신뿐”이라던 사람의 말보다, 이제는 선거가 끝난 뒤 그 사람이 드는 ‘저울’을 보겠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저울, 공과 과를 가르는 저울, 내 편과 남의 편을 대하는 저울.

그 저울이 기울어져 있다면 앞으로 4년 동안 들게 될 더 큰 인사와 예산, 정책의 저울도 어찌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선거는 끝났어도 기억은 끝나지 않습니다.

다음 선거에서 제가 던질 한 표에는 그 사람의 지난 4년뿐 아니라,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제 부끄러움과 반성까지 함께 담길 것입니다.

* 지난 지방선거를 현장에서 경험한 어느 독자의 편지를 정리했습니다.

[동대문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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