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끝나면 당선자는 축하를 받고 낙선자는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당락이 아니라 그 이후다.
선거는 사람을 가려내는 과정이지만, 지역은 사람을 남기는 과정이어야 한다. 당선된 사람만 남고 낙선한 사람은 사라지는 곳에서는 새로운 인물이 자라기 어렵다. 경쟁자를 적으로 여기기보다 지역의 자산으로 품을 때 공동체는 더욱 두터워진다.
당선자도 지역의 자산이고 낙선자 또한 지역의 자산이다. 오늘의 낙선자가 내일의 지도자가 되고, 오늘의 경쟁자가 내일의 동료가 되기도 한다. 지역의 힘은 사람을 얼마나 남기느냐에서 시작된다.
권력이 있는 곳으로 사람이 모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지역에서 사람을 키우기보다 밖에서 온 사람을 받드는 데 익숙해지고, 실력보다 줄서기가 앞서고, 원칙보다 눈치가 높이 평가되는 순간 공동체는 스스로의 뿌리를 약하게 만든다.
옛사람들은 귤화위지(橘化爲枳) 라 했다.
강남의 귤나무를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이다.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토양이 사람을 바꾼다는 말이다.
지역도 마찬가지다.
지도자를 키우는 일 역시 새 식구를 들이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마다 살아온 길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그러나 좋은 집안은 다름을 경계하기보다 품고, 부족함을 탓하기보다 함께 채워간다.
그렇게 집안의 가풍과 사람의 재능이 어우러질 때 한 사람은 비로소 그 집의 사람이 된다.
지역 또한 그렇다.
실패를 이유로 사람을 밀어내기보다 경험으로 인정하고, 넘어졌다고 외면하기보다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곳에서는 인물이 자란다. 반대로 승자만 기억하고 패자를 잊어버리는 곳에서는 결국 사람이 떠난다.
사람이 떠나는 지역에는 희망도 함께 줄어들고, 사람이 남는 지역에는 미래 또한 함께 자란다.
인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치가 발전하는 곳은 승자만 남는 곳이 아니라 승자와 패자가 함께 지역을 가꾸는 곳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지역의 인재를 키우기보다 낯선 이름이 나타나면 먼저 줄을 서고, 사람의 실력보다 힘의 크기를 먼저 재고 있지는 않은가. 책임 있는 충언보다 달콤한 아첨을 더 반기고 있지는 않은가.
충언은 귀에 거슬리지만 공동체를 살리고, 아첨은 달콤하지만 공동체를 병들게 한다.
옛사람들은 또 전거후공(前車後轍) 이라 했다.
앞 수레가 지나간 자국은 뒤 수레의 거울이 된다는 뜻이다. 어른들이 권력만 좇으면 젊은 세대도 권력을 좇게 되고, 어른들이 줄서기를 배우면 후배들 또한 줄서기를 배운다.
아이들의 잘못된 버릇이 어른들의 책임인 것처럼, 지역의 철새정치 또한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닐지 모른다.
사람을 키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사람을 잃는 데는 잠깐이면 충분하다. 승자를 축하하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패자를 보듬는 일이다.
그 속에서 다음 지도자가 자라고, 다음 세대의 희망이 자란다.
옛사람들은 십년수목(十年樹木), 백년수인(百年樹人) 이라 했다.
나무 한 그루를 키우는 데도 십 년이 걸리지만 사람 하나를 키우는 데는 백 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수국은 같은 품종이라도 토양에 따라 꽃빛이 달라진다고 한다. 산성 토양에서는 푸르게 피고, 알칼리성 토양에서는 붉게 피어난다.
꽃이 변한 것이 아니라 꽃을 품은 땅이 달랐던 것이다.
사람 또한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인물을 만드는 것은 재능만이 아니라 그를 품어주는 토양이고, 지역의 미래 또한 어떤 사람을 선택했는가보다 어떤 사람을 키워냈는가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지역의 품격은 얼마나 많은 당선자를 배출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품고 남겼는가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사람을 키우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을 키우기보다 줄 세우는 일에 더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