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사람 때문에 웃기도 하지만, 사람 때문에 가장 깊이 상처받기도 합니다.
믿었던 사람이 어느 날 등을 돌리고,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주었는데 형편이 나아지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돌아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리 진심을 이야기해도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도 만나게 됩니다.
젊었을 때는 그런 일을 만나면 따지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지?”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해야 했고, 오해가 생기면 반드시 풀어야 했으며, 억울하면 어떻게든 진실을 밝혀야 마음이 풀렸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 이상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싸움에서는 이겼는데 마음은 편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밝혔는데도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미 떠나간 사람인데 미움 때문에 몇 년씩 내 마음속에 붙잡아두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이긴 것은 누구일까요.
* 1800여 년 전 어느 황제의 고민
지금으로부터 1800여 년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던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비슷한 문제로 고민했던 모양입니다.
그에게는 군대가 있었고 권력이 있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멀리할 수도 있었고, 명령 하나로 수많은 사람을 움직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전쟁터와 황궁에서 틈틈이 자신에게 적어놓은 『명상록』을 들여다보면 조금 의외입니다. 세상을 어떻게 지배할 것인가보다 자신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를 더 많이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루를 시작하면서 오늘도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 은혜를 모르는 사람, 오만한 사람, 속이는 사람, 시기하는 사람 등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일러두었습니다.
황제의 주변이라고 사람 사는 세상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 믿었던 사람이 등을 돌렸을 때
배신은 낯선 사람에게 당해서 아픈 것이 아닙니다. 믿었던 사람이기에 아픕니다.
그래서 배신을 당하면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을까” 하고 이유를 찾게 됩니다. 따져 물을 수도 있고, 똑같이 돌려줄 수도 있습니다. 용서하고 다시 손을 잡을 수도 있고, 아무 말 없이 거리를 두고 돌아설 수도 있겠지요.
아우렐리우스는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에 자신의 품성까지 흐트러지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그 생각을 곱씹다 보면 질문 하나가 생깁니다. 이미 나를 떠난 사람을 미워하느라 아직도 내 마음속에 붙잡아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용서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잊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다만 그 사람을 언제까지 내 마음 한가운데 살게 할 것인지는 한번 생각해볼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은혜를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람을 오래 겪다 보면 배신만큼이나 서러운 것이 배은일 때도 있습니다.
힘들 때 도와주었고, 어려울 때 손을 잡아주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그 모든 일을 잊어버린 듯한 사람. 그럴 때면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옵니다.
고마움을 알아달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는 돕지 않겠다고 마음먹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내가 그날 베푼 것은 훗날의 보답을 미리 사둔 것이 아니라, 그때의 내가 선택한 일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고마움을 기억할 것인지는 그의 몫이고, 어떤 마음으로 베풀었는지를 기억하는 것은 나의 몫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느 날에는 “나는 할 만큼 했다.” 그 한마디로 마음속 장부를 덮는 편이 오히려 나을 때도 있지 않을까요.
* 아무리 말해도 통하지 않는 사람
어쩌면 가장 지치는 관계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인지도 모릅니다.
한 번 설명하고, 혹시 오해했을까 싶어 다시 설명하고, 그래도 안 되면 더 많은 말을 꺼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묻게 됩니다.
내 설명이 부족한 것일까. 아니면 저 사람에게 애초에 들을 마음이 없는 것일까.
아우렐리우스는 상대가 잘못하고 있다면 가능하면 일깨워주려 했고, 반대로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누군가 제대로 보여준다면 자신의 생각 역시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니 한 번 더 이야기해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백 번 이야기해도 서로 같은 자리만 맴돈다면 말을 멈추는 선택도 있을 겁니다.
침묵한다고 반드시 진 것은 아닐 테니까요.
* 결국 남는 것은 내 마음
배신한 사람에게 다시 다가갈 것인지 거리를 둘 것인지, 은혜를 모르는 사람에게 서운함을 말할 것인지 마음의 장부를 덮을 것인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끝까지 설득할 것인지 어느 순간 돌아설 것인지…. 정답은 아마 없을 겁니다.
사람마다 사연이 다르고, 붙잡아야 할 인연도 있으며 놓아야 비로소 편안해지는 인연도 있을 테니까요. 싸워야 할 때도 있고, 아무 말 없이 돌아서는 것이 나을 때도 있을 겁니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외부의 일 때문에 괴로울 때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그 일 자체뿐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의 판단일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습니다.
그렇다고 아프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배신은 아프고, 배은은 서럽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답답합니다. 황제도 사람이었으니 그런 감정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을 겁니다.
다만 그는 그럴 때마다 상대방을 들여다보기 전에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려 했던 것 같습니다.
세계를 호령했던 황제에게도 마음 하나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전쟁터에서도, 황궁에서도 자신에게 글을 쓰며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겠지요.
저 사람을 바꿀 것인가, 싸울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돌아설 것인가.
어느 길이 옳은지는 저마다 다를 겁니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을 했느냐보다, 그 선택 뒤에도 내가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느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 때문에 마음 아픈 어느 날에는 우리도 한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지금 저 사람을 이기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내 마음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일까.”
세상을 다스렸던 황제도 평생 답을 찾으려 했던 것이 자기 마음이었다면, 우리네 인생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은가 봅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때로는 떠나보내면서….
결국 우리는 평생
내 마음 하나 다스리는 법을 배우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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