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지난 20년간의 주택공급정책을 되돌아보며 과거 정비구역 해제와 도시재생 중심 정책이 주택공급 기반을 약화시키고 막대한 재정 손실을 초래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박원순 전 시장 재임 기간인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정비구역 389곳이 해제되면서 약 43만 가구의 주택공급 기회가 사라졌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서울시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서울 주택 공급정책 20년의 평가와 성찰' 백서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백서는 2000년대 뉴타운사업을 통한 주택공급 기반 확대, 정비구역 해제와 도시재생 중심의 정책 전환, 2021년 이후 정비사업 정상화까지 서울시 주택정책의 변화와 성과, 한계를 분석한 자료다.
특히 서울시는 과거 정비사업 억제 정책을 공급 기반 붕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면서도, 과거 오세훈 시정에서도 정비구역 해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함께 공개해 주목된다.
정비구역 389곳 해제…43만 가구 공급 기회 사라져
서울시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전체 정비구역 683곳 가운데 389곳이 해제됐다. 전체의 약 57%에 해당한다.
서울시는 이 과정에서 당초 계획됐던 약 43만 가구의 주택공급 기회가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다만 43만 가구는 실제 건설이 확정됐다가 취소된 물량이 아니라 정비사업이 정상적으로 추진됐을 경우 공급할 수 있었던 계획상 물량을 의미한다.
해제 당시 사업 추진단계를 살펴보면 정비예정구역 단계에서 해제된 곳이 189곳으로 48.6%를 차지했다.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해제된 곳은 41곳으로 10.5%였다.
추진위원회 승인을 받은 뒤 해제된 곳은 131곳으로 33.7%, 조합설립인가 이후 해제된 곳은 17곳으로 4.4%였다.
사업시행인가까지 받은 뒤 해제된 곳도 11곳으로 2.8%에 달했다.
특히 추진위원회 승인 이후 해제된 구역은 모두 159곳으로 전체의 약 41%를 차지했다.
서울시는 이미 상당한 행정절차와 사업비가 투입된 지역까지 해제되면서 주택공급 기회 상실뿐 아니라 주민 부담과 사회적 비용도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더욱이 해제된 389곳 가운데 현재 177곳에서는 정비사업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한 차례 중단했던 정비사업을 다시 시작하면서 사업 추진기간이 길어지고 행정력과 비용이 중복 투입됐다는 것이 서울시의 평가다.
주민 의견조사 없이 해제…절차적 정당성 논란
백서는 정비구역 해제 과정에서 주민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서울시는 해제된 389곳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주민 의견조사 없이 직권해제하거나 행정청의 자의적 판단으로 해제한 곳은 66곳으로 전체의 17%였다.
주민 의견조사를 실시했지만 조사 과정의 오류나 절차적 문제가 있었던 곳은 264곳으로 68%를 차지했다.
주민들이 정비사업 추진을 희망했음에도 일몰제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해제된 곳은 59곳으로 15%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종로구 창신·숭인 재정비촉진지구다.
서울시는 당시 창신·숭인 재정비촉진지구 14개 구역 가운데 7개 구역이 주민 의견조사 없이 직권해제됐다고 설명했다.
종로구 사직2구역은 역사·문화적 가치 보존을 이유로 해제됐지만 이후 대법원에서 직권해제가 위법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성북구 장위15구역에서는 일부 주민에게 의견조사 우편물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으며, 영등포구 신길1구역은 주민 의견조사 참여율이 12%에 불과한 상태에서 해제 절차가 진행됐다.
중랑구 중화4구역은 주민들이 일몰기한 연장을 요청했지만 사업 추진 가능성보다 기한 경과를 우선해 해제한 사례로 제시됐다.
서울시는 이러한 사례들이 당시 정비구역 해제 과정에서 주민 의사와 사업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도시재생에 1조960억원…매몰비용은 1,640억원
정비구역 해제 이후 대안으로 추진된 도시재생사업에도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다.
서울시가 밝힌 관련 예산은 도시재생활성화사업 약 9,110억원과 주거환경개선사업 약 1,850억원으로 총 1조960억원이다.
서울시는 당시 도시재생정책이 노후주택 정비와 주택공급 확대보다는 기존 건축물 보존과 공동체 활성화에 치중했다고 분석했다.
노후 골목길을 정비하거나 벽화를 조성하고 주민 공동이용시설을 설치하는 방식으로는 주택 노후화와 기반시설 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백서 발표자료에는 도시재생사업과 주거환경개선사업의 매몰비용이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도시재생사업 매몰비용은 1,632억원, 주거환경개선사업 매몰비용은 8억원으로 모두 1,640억원이다.
이는 관련 사업에 투입된 전체 예산 1조960억원의 약 15%에 해당한다.
다만 서울시가 제시한 매몰비용 1,640억원의 구체적인 산정 기준과 사업별 내역은 별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전체 투입 예산을 모두 낭비된 예산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도로와 골목길 정비, 생활편의시설 확충 등 일부 사업의 성과는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사업이 주택공급 확대라는 측면에서는 한계를 보였더라도 주민 생활환경 개선과 공동체 활성화라는 본래 목적까지 모두 실패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정비사업 착공 물량 절반 수준으로 감소
서울시는 과거 정비구역 해제와 신규 구역 지정 위축이 최근 주택공급 감소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연평균 2만9천 가구였던 정비사업 착공 물량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1만5천 가구로 줄었다.
약 48% 감소한 수치다.
정비구역 지정부터 조합설립,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 이주와 철거를 거쳐 착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한 정비사업의 특성상 과거 정책의 영향이 뒤늦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서울시는 최근 15년 동안 서울의 거주인구가 약 18% 감소했지만 가구 수는 오히려 약 14%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 10년 이내 정비가 필요한 노후주택이 약 193만 가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인구가 줄더라도 1인 가구 증가와 가구 분화로 주택 수요는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세훈 시정에서도 정비구역 31곳 해제
이번 백서 발표자료에서 주목할 부분은 과거 오세훈 시정에서도 정비구역 해제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서울시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이전 오세훈 시장 재임 기간에는 전체 808곳 가운데 31곳이 해제됐다. 약 4% 수준이다.
반면 박원순 시장 재임 기간인 2012년부터 2020년까지는 전체 683곳 가운데 389곳이 해제돼 약 57%를 차지했다.
서울시는 두 시기의 정비구역 해제는 성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오세훈 시정에서는 사업 추진이 어렵거나 주민 갈등이 심한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해제했고, 박원순 시정에서는 정비사업 억제와 도시재생 중심의 정책 전환에 따라 대규모 해제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대표적인 비교 사례로 마장2구역과 구의동 72-3구역 등을 제시했다.
다만 두 시기의 정비구역 해제 규모와 사유를 비교할 때는 당시 부동산 경기와 주민 동의율, 사업성, 제도적 여건 등의 차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정비구역 해제 건수만으로 특정 시기의 정책 성과를 모두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정비구역 지정은 오세훈, 착공은 박원순 시정이 많았다?
서울시는 이번 발표자료에서 역대 시장별 정비구역 지정과 착공 실적도 비교했다.
자료에 따르면 오세훈 시장의 첫 재임 기간에는 뉴타운과 정비구역 지정을 통해 대규모 주택공급 기반이 마련됐다.
반면 박원순 시장 재임 기간에는 과거 지정된 정비구역에서 실제 인허가와 착공이 이뤄지면서 주택공급 실적이 나타났다.
서울시는 정비사업의 특성상 구역 지정부터 착공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실제 착공 실적이 반드시 해당 시장 재임 기간의 정책 성과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오세훈 시장의 첫 재임 기간에 지정된 정비구역이 박원순 시장 재임 기간에 착공하거나 준공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박원순 시장 재임 기간에 추진된 사업이 이후 오세훈 시장 재임 기간에 착공하거나 입주하는 사례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정비사업의 성과는 구역 지정과 인허가, 착공, 준공을 구분하고 사업 추진기간 전체를 살펴봐야 한다.
특히 서울시가 이번 백서에서 강조한 정비구역 지정 확대 역시 실제 착공과 입주로 이어져야 정책 성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오세훈 시장 취임 후 정비구역 지정 2배 이상 증가
서울시는 2021년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정비사업 정상화와 규제 완화를 통해 주택공급 기반을 회복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1년 5월 발표한 '재개발 활성화를 위한 6대 규제완화 방안'을 시작으로 주거정비지수제를 폐지하고 공공기획을 도입했다.
이후 공공기획을 신속통합기획으로 발전시켜 정비계획 수립과 정비구역 지정 절차를 지원했다.
또 재개발 해제구역 가운데 노후지역의 신규 구역 지정, 2종 7층 일반주거지역 규제 완화, 사업성 보정계수 도입, 현황용적률 인정, 공공기여 부담 완화 등을 추진했다.
그 결과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77곳이었던 정비구역 지정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172곳으로 증가했다.
이전 5년과 비교하면 약 2.2배 수준이다.
2022년에는 대규모 재개발이 어려운 노후 저층주거지를 대상으로 모아주택·모아타운 제도를 도입해 소규모 정비사업도 지원하고 있다.
다만 정비구역 지정이 늘었다고 곧바로 주택공급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구역 지정 이후에도 조합설립과 각종 인허가, 공사비 협상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실제 착공과 입주가 가능하다.
2031년까지 31만 가구 착공…실제 공급이 관건
서울시는 정비사업 정상화 정책을 통해 회복한 주택공급 기반을 실제 착공으로 연결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31년까지 31만 가구 착공을 목표로 사업성 개선과 인허가 기간 단축, 사업 단계별 공정관리를 강화할 방침이다.
정비구역 지정 이후 사업이 장기간 정체되지 않도록 현장별 지연 요인을 관리하고 착공과 준공까지 이어지는 공급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번 백서를 통해 과거 주택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기록하고 향후 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명노준 서울시 주택실장은 "본 보고서는 과거 사례를 정확한 통계와 근거로 조사하고 문서화·기록화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며 "시민들에게 현재 공급 부족의 원인을 정확히 알리고 서울시 주택공급정책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번 백서는 과거 서울시 주택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공식적으로 평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정비구역 해제의 원인과 도시재생사업의 성과를 둘러싼 평가는 정책적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당시 정비구역 해제에는 사업성 부족과 주민 갈등, 부동산 경기 침체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으며, 도시재생사업 역시 주택공급 이외에 생활환경 개선과 공동체 회복을 목적으로 추진됐다.
무엇보다 과거 정책의 실패를 지적하는 것만으로 현재의 주택공급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가 제시한 2031년까지 31만 가구 착공 목표가 실제 주택공급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향후 정책 성과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전망이다.
[동대문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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