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치는 풀뿌리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국회와 중앙정부가 국가의 큰 방향을 결정한다면 지방의원과 기초단체장은 주민의 골목과 시장, 교통과 복지, 교육과 지역개발처럼 삶에 직접 닿는 문제를 책임진다. 지방정치는 중앙정치보다 작아 보일지 몰라도 주민의 삶과 재산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다.
그런데 지방선거가 끝날 때마다 공천 후유증은 늘 반복된다.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나 줄서기 문화가 선거 뒤까지 이어지고, 지역에서 오래 일해온 사람보다 선거철에 갑자기 등장한 정치인이 공천을 받아 자리를 차지했다는 불만도 끊이지 않는다. 지역을 위해 일하기보다 공천권자의 눈치를 먼저 보는 정치, 지역을 더 큰 정치로 가기 위한 발판 정도로 여기는 ‘철새 정치’가 풀뿌리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계속되는 건 분명 문제다.
더 큰 문제는 당선 이후다. 선거 때는 온갖 공약이 쏟아지지만 충분한 검토 없이 나온 정책은 행정 혼선을 만들고, 재원이나 실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공약 남발은 결국 주민의 세금 부담으로 돌아온다. 임기 안에 성과를 내겠다는 조급함으로 불필요한 사업을 벌이거나, 예산을 원래 목적과 다르게 쓰거나, 선심성 사업에 재정을 쏟는다면 그 부담은 결국 후임자와 주민, 그리고 다음 세대까지 이어진다.
특히 경계해야 할 건 기초단체장에게 집중된 행정 권한이다. 개발, 건축, 도시계획, 정비사업 같은 인허가 과정은 주민 재산권과 지역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인허가는 법과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하고, 단체장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하지만 법이 허용한 재량과 행정 판단이 특정 사업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리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긴다.
허용할 사업은 막고, 신중해야 할 사업은 서둘러 통과시키고, 공익보다 정치적 필요나 치적을 앞세운다면 행정 권한은 지역 발전의 도구가 아니라 권력의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 한 번 잘못된 인허가가 나면 건물과 시설은 수십 년 남고, 교통·환경·안전 문제와 주민 갈등까지 이어진다. 단체장은 임기를 마치고 떠나도 그 결과는 지역에 그대로 남는다.
그래서 지방의회의 견제가 중요하다. 기초의회가 인허가를 대신 결정할 수는 없지만, 예산 심의, 행정사무감사, 자료 요구, 구정질문, 조례 제·개정 등을 통해 과정이 공정했는지 충분히 따져볼 수 있다.
대규모 개발사업이나 주민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정책이라면, 의회는 이미 진행된 뒤가 아니라 초기 단계부터 공익성, 절차의 정당성, 교통·환경·안전 대책, 재정 부담 등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같은 정당이라고 무조건 감싸거나, 반대로 다른 정당이라고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라 주민 입장에서 묻고 확인하고 기록해야 한다.
지방의원은 단체장 사업에 박수치기 위해 있는 자리가 아니다. 잘한 건 돕되 잘못된 건 막고, 주민을 대신해 따져 묻는 게 본래 역할이다. 의회가 침묵하면 견제 없는 권력은 더 쉽게 커진다.
공무원 사회도 마찬가지다. 정책의 옳고 그름보다 단체장 눈치나 줄서기가 앞서기 시작하면 행정의 중심은 주민이 아니라 권력으로 옮겨간다. 인허가와 예산을 다루는 공직자는 특정 개인이 아니라 주민과 법을 기준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하지만 지방권력을 의회와 공무원에게만 맡겨둘 수도 없다. 결국 마지막 감시자는 시민사회다.
주민과 지역 언론, 시민단체, 전문가들이 예산과 개발계획, 인허가 과정에 관심을 갖고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의문이 있으면 질문해야 한다. 필요하면 주민감사청구 같은 제도도 활용하고, 의회 회의나 행정사무감사도 지켜보며 선거 때 다시 평가해야 한다.
지역 언론도 단순히 보도자료를 전달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 왜 이 사업이 필요한지,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부담을 지는지, 계획과 예산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주민 의견이 반영됐는지를 계속 추적해야 한다. 권력과 가까운 언론보다 주민과 가까운 언론이 많아질수록 지방자치는 건강해진다.
이미 잘못된 정책이 집행된 뒤라면 더 냉정해야 한다. 한 사람의 판단이나 치적 욕심으로 시작된 사업이라도 예산이 투입되고 시설이 만들어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실패한 사업인데도 운영비는 계속 들어가고, 그 부담은 결국 후임자와 주민에게 남는다. 정치인은 떠났지만 청구서는 지역에 남는 셈이다.
그래서 주요 정책과 대규모 사업에는 사후평가가 꼭 필요하다. 목표와 실제 성과, 예산과 손실, 앞으로의 재정 부담을 공개하고, 문제가 있다면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위법이 아니더라도 큰 정책 실패라면 그 과정과 결과를 기록으로 남겨 다음 판단의 기준이 되게 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징치’는 감정적인 보복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기록과 책임, 그리고 선거를 통한 평가다. 위법이면 법적 책임을, 부당한 행정이면 감사와 제도적 책임을, 무능과 독선으로 피해를 남겼다면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후임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전임자가 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뒤집어서도 안 되고, 이미 돈이 많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잘못된 사업을 계속 끌고 가서도 안 된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지금까지 얼마가 들어갔는지, 계속하면 얼마나 더 필요한지, 중단하면 어떤 손실이 생기는지를 주민에게 솔직히 설명해야 한다. 살릴 건 살리고, 고칠 건 고치고, 멈출 건 멈추는 게 책임 있는 행정이다.
후임자는 전임자의 잘못을 비난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후유증을 정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반대로 잘한 정책이라면 정당이 달라도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행정에는 전임자 것도, 후임자 것도 없다. 주민에게 필요한 정책이 있을 뿐이다.
공천을 준 정당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후보를 내세웠다면 당선 이후 4년의 행정까지 평가해야 한다. 공천장은 단순한 당선 보증이 아니라 주민에게 내놓는 책임의 약속이다. 큰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라면 다음 공천에서 책임을 묻는 게 최소한의 도리다.
결국 건강한 지방자치는 어느 한 권력에 기대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단체장은 절제하고, 공무원은 원칙을 지키고, 의회는 견제하고, 시민사회와 언론은 감시해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무너지면 풀뿌리민주주의는 쉽게 권력 중심 구조로 바뀐다.
공천은 정당이 하지만, 권한의 주인은 주민이다.
단체장은 임기가 끝나면 떠날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인허가로 생긴 건물과 시설, 실패한 사업, 낭비된 예산, 그리고 주민의 상처는 오래 남는다.
그래서 지방정치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건 낙선이 아니라, 임기가 끝난 뒤에도 남는 ‘잘못된 행정의 기록’이다.
잘한 건 이어가고, 잘못된 건 바로잡고, 책임질 사람에게는 책임을 묻고, 그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
그게 지방의회의 역할이고, 시민사회의 몫이며, 후임자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다.
그리고 마지막 판단은 결국 주민의 한 표가 한다.
그 한 표가 살아 있을 때, 지방정치는 비로소 권력의 정치가 아니라 주민의 정치가 되고, 풀뿌리민주주의도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다.
[동대문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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