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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과 뜰채 |
살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내 자리가 아니라 내 사람됨을 알아주는 사람 하나를 만나는 일은 드물다. 관중에게 포숙아가 그런 사람이었다.
중국 춘추시대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는 젊은 시절부터 가까운 벗이었다. 함께 장사를 했는데 이익을 나눌 때 관중이 자기 몫을 조금 더 가져가도 사람들은 욕심이라 했지만 포숙아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관중의 집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관중이 여러 번 일을 벌였다 실패해도 무능하다고 하지 않았고, 전쟁터에서 물러났을 때도 겁쟁이라 비웃지 않았다. 그에게 늙은 어머니가 있다는 사정을 헤아렸다. 남들은 행동만 보았지만 포숙아는 그 뒤의 형편과 마음까지 보았다.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편에 서게 됐다. 관중은 공자 규를 섬겼고, 포숙아는 훗날 제 환공이 되는 소백을 섬겼다. 권력 다툼에서 소백이 승리하면서 포숙아는 승자의 사람이 되었고 관중은 패자의 사람이 됐다.
관중에게는 죽음이 닥쳐오고 있었다. 그런데 포숙아는 뜻밖의 선택을 했다. 승자의 곁에서 자신의 자리를 챙기는 대신 관중을 살려달라고 청했고, 오히려 그를 나라의 큰일을 맡길 사람으로 천거했다. 포숙아는 자신보다 관중의 그릇이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 환공은 결국 관중을 받아들였고, 관중은 제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다. 환공 역시 춘추시대의 패자로 올라섰다.
훗날 관중은 포숙아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생아자부모 지아자포자야)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아다.”
그래서 두 사람의 우정을 관포지교(管鮑之交)라 부른다.
생각해보면 포숙아가 관중에게 준 가장 큰 것은 돈도 자리도 권력도 아니었다. ‘이해해주는 마음’이었다. 남들이 욕심쟁이라고 할 때 그의 가난을 보았고, 남들이 무능하다고 할 때 아직 오지 않은 때를 기다려주었으며, 남들이 겁쟁이라고 할 때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먼저 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승자가 된 뒤에도 패자가 된 벗을 버리지 않았다.
어쩌면 의리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힘들 때 손을 잡는 것도 귀하지만, 내가 잘된 뒤에도 어려웠던 시절의 사람을 같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 그 사람이 나보다 뛰어나다면 그것까지 인정하고 기꺼이 길을 열어주는 것 말이다.
관중은 천하에 이름을 남겼지만, 그 관중을 세상이 알아보기 전에 먼저 알아본 사람이 포숙아였다. 관중 같은 능력을 갖는 것도 복이지만, 포숙아 같은 사람 하나를 만나는 것은 더 큰 복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더 욕심을 내본다면 누군가에게 그런 포숙아가 되어주는 삶 또한 꽤 잘 살아온 인생일 것이다.
주민과 정치인의 관계도 그랬으면 좋겠다. 주민은 정치인이 필요할 때만 찾는 표가 아니고, 정치인 역시 주민에게 선거 때만 필요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려울 때 서로의 말을 듣고, 잘됐을 때도 처음의 마음을 잊지 않으며, 생각이 달라도 사람에 대한 존중만큼은 지켜가는 관계여야 한다.
주민이 정치인을 믿어주었다면 정치인은 그 믿음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하고, 정치인이 진심으로 지역을 위해 일했다면 주민 역시 그 노력은 제대로 바라봐줄 필요가 있다.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이 오래 남은 까닭은 한쪽이 다른 쪽을 이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끝까지 존중했기 때문이다.
주민과 정치인의 관계도 선거 때 잠시 손을 잡았다가 끝나면 멀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오래 기억하고 존중하며 함께 지역을 키워가는 관계였으면 좋겠다.
정치는 결국 사람의 일이다.
어쩌면 정치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잡는 일 아닐까.
[동대문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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