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있다. 또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말도 있다. 요즘 지방정치를 바라보면 두 말 모두 틀린 이야기 같지 않다. 주민들이 골목에서 목이 쉬도록 이야기해도, 어떤 정치인들은 끝내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민심보다 줄을 더 살피고, 주민 얼굴보다 공천권자의 눈빛을 먼저 읽는다.
얼마 전 한 지방의원이 “주민보다 지구당 위원장에게 잘 보이면 된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풀뿌리민주주의’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주민 손으로 뽑힌 지방의원이 정작 주민보다 윗선을 더 의식한다면, 지방자치의 뿌리는 이미 흔들리고 있는 것 아닌가.
선거철이 되면 거리마다 비슷한 현수막이 걸리고, 비슷한 말들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다. 홍보물과 선거차량까지 당협의 힘 있는 사람 손을 거쳐야 한다는 말도 들린다. 정치가 주민 뜻보다 보이지 않는 줄과 눈치 속에서 움직인다면, 그것은 자치라기보다 예속에 가까운 풍경일지도 모른다.
한때는 부패의 온상이라며 폐지됐던 지구당 제도도 결국 이름만 바꾼 채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역 정치는 점점 더 위를 바라보고, 아래의 목소리는 점점 더 멀어지는 듯하다.
주민 손으로 뽑힌 의원이 주민보다 다른 곳의 눈치를 먼저 살피는 모습은 꼭두각시를 떠올리게 한다. 예전에는 국회의원 선거 몇 번만 치러도 집안 기둥뿌리가 흔들린다고 했지만, 이제는 시·구의원들이 대신 골목을 돌고, 대신 인사를 하고, 대신 깃발을 든다. 그 사이 누군가는 점점 더 높아지고, 누군가는 점점 더 작아진다.
가끔은 지방의원들 스스로도 “이래선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자괴감 섞인 한탄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제도가 그렇다는 이유로 언제까지 이런 종속적 정치를 반복해야 하는가. 이제는 공천권자의 처마 밑이 아니라 자신들을 뽑아준 주민들의 품으로 돌아와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정치는 주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이 아니라 주민 곁에 머무는 책임이어야 한다. 주민과의 대화보다 윗선과의 통화가 더 중요해진 정치라면, 우리가 바라던 지방자치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또 투표장으로 향한다. 혹시 이번만큼은 주민 목소리를 먼저 듣는 사람 하나쯤 나타나길 바라면서 말이다.
기차는 오늘도 달린다. 그러나 언젠가는 선로 옆 작은 목소리에도 잠시 멈춰 서는 정치가 와야 하지 않겠는가. 어쩌면 그것이 다가오는 6·3 지방선거에서 우리 동네 일꾼을 더 신중히 뽑아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