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고을에도 박수는 있었다.
원님이 한마디를 하면 아전들은 앞다투어 "옳습니다.", "훌륭하십니다."를 외쳤다. 잘못된 정책도 칭송했고, 무리한 명령도 충성이라며 따랐다. 원님의 귀에는 언제나 듣기 좋은 말만 들렸다.
그러나 장터의 백성들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
그들은 조용히 원님을 평가했다. 세금이 가벼워졌는지, 억울한 사람이 줄었는지, 장터가 살아났는지, 아이들이 웃으며 자랐는지…. 백성의 침묵은 가장 정확한 평가였고, 그 평가는 어떤 아부보다 냉정했다.
역사는 수없이 반복해서 말해 왔다.
권력은 아부를 좋아할 수 있다. 듣기 좋은 말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비판 없는 조직은 안정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평온은 오래가지 못한다. 진실을 외면한 권력은 현실을 잃고, 현실을 잃은 권력은 결국 민심도 잃는다.
북송의 명재상 사마광(司馬光)은 아첨하는 신하는 임금의 눈과 귀를 가리고, 바른 신하는 임금의 눈과 귀를 열어 준다는 뜻을 강조했다. 지도자에게 가장 위험한 사람은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못을 알면서도 칭찬만 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일깨운 것이다. 권력은 귀를 즐겁게 하는 말보다 눈을 뜨게 하는 말을 가까이해야 오래갈 수 있다는 교훈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 역시 『목민심서』에서 목민관의 첫째 임무는 백성의 삶을 살피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아전의 보고만 믿고 백성의 고통을 외면하면 고을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속으로는 이미 병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목민관이 먼저 찾아야 할 곳은 관아가 아니라 백성의 삶이었다.
시대도, 나라도 달랐지만 사마광과 정약용이 남긴 가르침은 하나였다.
지도자의 귀는 권력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신을 가장 잘 보여 준 인물이 당나라 태종이었다.
당 태종은 거침없이 직언하던 충신 위징을 끝까지 곁에 두었다. 주변에서는 황제 앞에서 너무 거칠게 간언하는 위징을 멀리하라고 권했지만, 태종은 오히려 그를 나라를 살리는 충신이라 여겼다.
위징이 세상을 떠나자 태종은 깊은 탄식을 남겼다.
"구리를 거울로 삼으면 의관을 바로잡을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흥망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잘못을 알 수 있다. 이제 위징이 죽었으니 나는 거울 하나를 잃었다."
위대한 지도자는 자신을 칭찬하는 사람보다 자신의 허물을 말해 주는 사람을 더 소중히 여겼다. 직언을 잃으면 거울을 잃고, 거울을 잃으면 자신을 잃는다. 아부는 권력자의 귀를 즐겁게 하지만, 직언은 나라를 바로 세운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다.
어느 조직이든 아부는 잠시 분위기를 좋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을 성장시키는 것은 칭찬이 아니라 진실이며, 권력을 지키는 것은 박수가 아니라 신뢰이다. 민생은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낮은 곳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권력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박수보다 현장에서 들려오는 작은 한숨을 먼저 듣는 사람, 아전의 칭찬보다 백성의 불편을 먼저 살피는 사람, 그런 지도자가 결국 시대의 신뢰를 얻고 역사의 칭송을 받는다.
권력은 언젠가 끝난다. 그러나 백성의 평가는 끝나지 않는다. 백성은 박수를 많이 받은 지도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게 만든 지도자를 오래 기억한다. 그래서 지도자의 이름은 퇴임식의 박수로 남는 것이 아니라, 떠난 뒤에도 백성의 입에서 다시 불릴 때 비로소 역사로 남는다.
박수는 아전이 치고, 칭송은 백성이 한다.
아부는 오늘의 권력을 기쁘게 하지만, 민생은 내일의 역사를 만든다.
귀를 권력에 열면 진실은 멀어지고, 귀를 백성에게 열면 신뢰는 남는다.
천 년 전 사마광의 경계도, 정약용의 목민정신도, 그리고 당 태종이 위징을 잃으며 남긴 탄식도 결국 하나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지도자의 가장 큰 자산은 아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언하는 사람이며, 가장 큰 업적은 화려한 박수가 아니라 백성의 칭송이다. 역사는 늘 권력의 박수보다 백성의 평가를 더 오래 기억한다.